
‘배트맨 비긴즈’의 후속작 ‘다크 나이트’는 이전의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배트맨의 묵직하고 클래식한 검은색 수트는 화려한 원색 수트의 다른 영웅들과 다르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원작은 코믹북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런 류의 영화 공식을 모두 깨고 어둡고 복합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 액션영화의 옷을 입은 범죄드라마 또는 스릴러물로 완성됐다. 그리고 그 정점엔 ‘슈퍼히어로’ 배트맨에 맞서는 ‘슈퍼빌리언’ 조커가 있다.

팀 버튼 감독의 1989년 ‘배트맨’에서 잭 니컬슨이 맡은 조커는 그로테스크하지만 유머러스한 악당이었으며, 그의 본래 이름은 물론 조커가 된 사연이 존재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속 조커는 실제 이름도 정체도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이되 인간적 면모가 제거된 그는 순수 악 그 자체다. 그는 마치 신화 속 ‘파괴의 신’처럼 사람들의 윤리성을 시험하기도 하고, 사회를 무정부와 혼돈의 상태로 이끈다. 조커는 또 합리적인 도덕률을 지닌 배트맨과 검사 하비 덴트를 시험하면서 고도의 심리전으로 ‘영웅’을 타락시키고자 한다. 이를 통해 조커는 선과 악은 언제나 뒤집을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배트맨과 조커, 또는 하비 덴트와 조커 등 영화 속 선과 악, 악당과 영웅의 구분은 확실하지만, 그 경계는 줄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관객은 슈퍼히어로가 악당을 무찌르는 데서 오는 통쾌함 대신 혼돈, 절망, 불안을 느낀다.
사실 배트맨은 그 어떤 슈퍼히어로보다 현실에 발을 붙인 캐릭터다. 그는 초능력 대신 딱딱한 수트를 입고 맨몸으로 싸울 뿐이다. 스파이더맨의 속도와 헐크의 괴력, 아이언맨의 미사일이 있었다면, 이 같은 만화적 설정에서 이들 슈퍼히어로들은 겨우 인간에 불과한 조커를 간단하게 해치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커는 이 같은 물리력 힘이 아니라 머리와 도덕으로 제압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섬뜩하다. 현실과 고딕풍이 혼재된 암울한 고담시는 몽환적이고 세기말적 분위기를 내는 동시에 9.11 이후 테러 공포에 떠는 현대의 세계를 반영한다.
이 같은 조커를 완벽하게 연기한 이는 지난 1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배우 히스 레저다. 과연 이 조커가 ‘브로크백 마운틴’의 무뚝뚝하면서도 섬세한 카우보이와 동일 인물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파격적이다. 조커 역을 연기하기 위해 히스 레저는 한달간 호텔에서 혼자 생활하며, 캐릭터의 몸짓과 목소리, 심리를 연구했다. 그는 일기를 쓰며 조커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그는 잭 니컬슨과 다른 그만의 조커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히스 레저를 추모하며’라는 엔딩 크레딧을 보면 이 배우의 요절이 더욱 아쉬워진다. 영화는 앞서 개봉한 미국 역대 슈퍼히어로 영화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박스오피스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히스 레저의 죽음과 그의 조커 연기 때문에 조커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다른 캐릭터들 역시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한다. 두 번째로 배트맨 연기를 맡은 크리스천 베일은 젠틀한 브루스 웨인과 고독한 영웅 배트맨 두 가지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또 고든 역의 게리 올드먼, 선과 악의 경계를 넘는 하비 덴트 역의 아론 에크하트, 그리고 모건 프리먼, 메기 질렌할 등이 제 역할을 다 한다. 8월 6일 국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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