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도연과 하정우 주연의 영화 ‘멋진 하루’는 로맨스 영화로 구분되지만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 않다. 헤어진 이후 다시 만난 연인들이라지만 드라마 ‘연애시대’나 영화 ‘싸움’처럼 아슬아슬한 애증의 줄타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루 동안 서울을 누비는 이들의 여정은 한 편의 로드무비에 가깝다.
병운은 ‘아는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100만원씩 돈을 꾼다. 병운을 귀여워하는 50대 여성 사업가부터 이혼해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 동창, 병운을 오빠라 부르는 고소득 호스티스 등 그의 ‘아는 여자’들은 병운에게 성의껏 돈을 빌려준다. 이 정도면 이 남자, 인간 관계가 좋은 것을 넘어 도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해진다. 병운은 끝도 없이 낙천적인 데다 능청스러운 캐릭터다. 그의 주변엔 이런저런 여자들이 많다. 하정우는 여자를 등쳐먹는 호스트 역으로 출연했던 영화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 역과 살짝 겹쳐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흐를수록 관객이 미처 몰랐던 병운의 진가가 드러난다. 여자에게 돈이나 꾸는 철없는 바람둥이였던 그는 해가 질 무렵엔 따뜻하고 사랑스런 남자로 변모해간다. 단지 빌린 돈을 받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차갑게 굳어 있던 희수 역시 병운을 향해 쳐놓았던 벽을 서서히 허문다. 서로 헤어져 있는 시간 동안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팍팍하게 살았던 두 사람은 낯선 이들과의 생소한 만남을 통해 자신을 정화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내면을 관객이 알아주길 바라듯 모두 토해내지 않는다. 관객은 그들의 모습을 서서히 알아가고 이해하면서 동질감과 안쓰러움을 함께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하루는 그다지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썩 괜찮은, 그래서 제목처럼 멋진 하루처럼 보인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My dear enemy’(나의 사랑스런 적)다. 희수가 병운에게 느끼는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역시 고개가 끄덕여지는 제목이다.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사랑의 흔적이 타인을 통해 언뜻언뜻 드러나는 장면이다. 홀로 있는 여자에게 말 거는 남자의 모습, 이어폰을 한쪽씩 귀에 꽂고 있는 다정한 연인, 그들이 자주 함께 갔던 어느 초라한 식당, 전화로 이별을 통보하는 어느 여자…. 이렇듯 일상 속 지나가는 한 풍경, 한 장면, 한 공간은 데자뷔처럼 우리에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 영화의 매력은 결말이다. 영화는 관습적인, '영화같은' 엔딩 대신 끝까지 현실적인, 쿨한 엔딩을 택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원한 안식처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먼훗날에도 이날 하루를 떠올리며 슬며시 웃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재미있고 달콤한 연애이야기 또는 그 후일담, 또는 따뜻한 해피엔딩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절대 비추다. 다소 지루한 것도 마이너스.
이 포스터는 참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전도연도 너무 예쁘고, 뒷편의 하정우도 전도연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눈길이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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