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의 쿨핫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었다.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라고 부르는 유시민은 이 책에서 헌법의 기본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민주주의를 쉽게 풀어냈다. 정말로 아주 쉬운 편이라서 ‘정치’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거나 그동안 관심 없이 살았던 사람들에게 유익한 책인 듯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하면서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거친 그의 현실적 경험담이 잘 녹아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시절을 소회하는 부분은 이제서야 보니 가슴이 아팠다. 책을 읽으면서 읽기 힘든 부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전에 쓰인 이 책에서 그는 참여정부를 향한 자랑스러움과 아쉬움, 또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권력의 역주행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라는 프롤로그에 담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구다. 차동엽 신부가 즐겨 인용하는 표현이라는데 유시민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 역사의 퇴행 또한 지나갈 것이다라고 썼다. 신문이나 뉴스 볼 때마다 뚜껑 열리는 일이 많은 나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마음가짐인 것 같다.

◆우리는 민주주의 값을 치르지 않았다.

유시민이 말하는 ‘후불제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가리킨다. 서양에서 수백년에 걸쳐 이룩된 민주주의를 우리는 해방과 함께 급작스럽게 맞이하게 됐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60년 동안 그 비용을 ‘후불’했다. 4.19 혁명, 5.18 광주항쟁,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그밖의 수많은 익명의 수고와 희생을 치렀다. 이런 식으로 후불로 민주주의 대가를 치렀지만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는 지금 그렇다는 ‘존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선언한 것일 뿐이다. 유시민은 419, 518, 610 등 거대한 국민 불복종운동을 통해 민주공화국으로 진화했으며, 이 진화를 만든 힘은 헌법 조문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 쓰인 대로 주권을 행사한 국민의 생각과 행동이라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님...

 그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도 동의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어떤 이는 ‘시대를 앞서간 대통령’ ‘우리에게 과분했던 대통령’이라는 말을 했다. 유시민도 노무현 대통령을 이전의 ‘어버이같은 대통령’ ‘천운을 받은 임금같은 대통령’이라는 기존 관념과 일반 국민의 인식과는 많이 달랐던 대통령으로 평했다. 노 대통령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사회적 정치적 계약의 산물로 보았기 때문에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재신임, 사임, 임기 단축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이 계속 재임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에게 좋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제한된 권력을 가진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언론, 사법부, 헌법재판소, 선관위, 정당 등 다른 권력기관과 수평적인 다툼이나 권한쟁의를 벌이면서 서로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것이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이라고 생각했다. 보수 언론과 싸우고 검사들과 논쟁하고 선관위나 헌재와 대립하는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운명처럼 무거운 것인데 노 대통령은 그 소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예전의 대통령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운명이 맺어준 만백성의 왕처럼 말했다.
왕국의 신민에게는 자애로운 국부와 국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국의 주권자에게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필요할 따름이다. 우리 마음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국부’나 절대권력자가 아닌 정치적 계약의 산물로 보았던 그는 정말 시대를 앞서갔던 대통령이었을까. 분명한 건 지금 현재 시대를 거스르는, 후퇴하는 대통령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의 힘이 아니라 말과 논리로 국정을 운영하려 했다. 노 대통령은 ‘재래식 살상무기’를 버리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 가운데 전쟁에 나섰다. 검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을 모두 청와대에서 독립시켰고, 야당과 보수 세력의 거센 정치공세에 시달리면서도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힘을 사용하는 대신 말을 사용하는 전투에서 대통령이 야당과 보수 언론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슴이 아팠다. 더불어 지금 ‘재래식 살상무기’로 여기저기서 마음껏 힘 자랑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며 마음을 다스린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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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책은 나의힘 l 2009/10/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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