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의 CoolHot



젊은날, 나는 사랑을 가리켜 ‘고유명사’라고 했다. 유일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박범신)

“아, 매번 사랑을 쓰는 일은, 매번 사랑을 하는 일만큼이나 설레고 황홀하고 곤란하고, 그리고 피로한 일이다.”(함정임)

“나는 사랑을 묘사하지 못한다. 늘 말이 막혀서 써지지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전달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다만 경험될 뿐일 것이다.”(김훈)

이처럼 사랑이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도처에 널려 있어 진부하기조차 한 사랑, 그래도 질리지 않고 매번 감동을 주는 인간의 영원한 테마, 사랑.

‘사랑’이라는 주제로 16명의 문인들이 자신의 생각, 느낌, 기억을 풀어냈다. 이들은 김훈 김인숙 윤대녕 유용주 박수영 전경린 함정임 최재봉 박범신 김용택 정길연 김갑수 윤광준 공선옥 하성란 이윤기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또는 시인들이다. 각자 개성이 다른 여러 문인들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 빛깔로 묶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보니 이들이 써내려간 사랑의 종류와 이야기 방식 역시 다양하다. 기억조차 아스라한 옛사랑의 모습부터 고통스런 최근의 사랑에 대한 기억, 스쳐가는 사랑과 뼛속까지 사무치는 중독 같은 사랑,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까지 짧은 호흡의 다양한 글은 즐겁게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들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수필처럼 또는 소설처럼 담담히 고백하기도 하고 오랜 경험으로부터 얻은 사랑에 대한 교훈을 털어놓는다.

소설가 전경린은 연하인 유부남과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자신의 소설 속 여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사랑에 빠지자 세상은 그로부터 등을 돌리고 친구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도 옛날 말이지. 요즘은 가진 것 없고 기댈 데 없는 가난한 여자들이나 하는 거야. 열정 같은 건 예절과 조건과 바꾸어 먹은 시대 아니니?”

남녀 관계에 있어 영원하고 유일한 고전적인 사랑 대신에 조건을 따지는 사랑이나 쿨한 사랑이 점령한 시대에 전경린은 공활한 세계 속에서 사랑만이 한 개인에게 진정으로 사적인 것, 자신이 각성할 수 있는 현재형이며 절대적 광휘로 빛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가 박수영은 영혼까지 사랑하면서도 자유롭기 위해 헤어진 이야기를 담담히 고백한다. 소설가 박범신은 사랑은 유일하다고 믿었던 젊은 시절을 보낸 뒤 이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더 넓고 더 많은 사랑을 발견한다.

사랑에 관한 각각의 에세이 뒤에는 문인들이 영화, 소설, 미술 작품 등을 통해 느낀 사랑에 대한 단상이 보너스로 펼쳐진다.


김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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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책은 나의힘 l 2005/10/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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