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면' 때문에라도 볼 만하다.
이준익 감독 영화를 보면 여성이 주변부에 머무는 느낌, 여성이 소외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건 주조연 문제가 아니다. 남자들의 '대의(大義)'에 끼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자인 느낌... 그런데 <님은 먼곳에>는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강인한 여성캐릭터를 보여준다고 해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영화 ‘님은 먼곳에’는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 주로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뤄왔던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수애가 단독 주연으로 나선 영화 ‘님은 먼곳에’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터에 뛰어든 어느 한 여인의 고된 여정을 그렸다.
여성의 관점으로 본 전쟁 이야기 또는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남성중심적 시각이 드러난다. 평범하고 순종적이었던 순이는 위문공연단 보컬이 되며 무대에 설수록 점차 자신감도 생기고 대담해진다. 또 밴드 내에서 입지도 커진다. 하지만 순이가 그런 힘을 갖게 된 근본 원인은 자신의 섹슈얼리티 덕분이다. 몇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 그녀 스스로 자신감을 얻게 된 것도 있지만, 순이가 “남편 있는 곳으로 가자”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그녀의 섹시함, 즉 관객(남자)을 끌어들이는 능력 때문이다. 순이는 보컬로서는 ‘드림걸스’의 제니퍼 허드슨 부류와는 다르다. 순이는 군인들 앞에서 다리를 드러내고 몸을 흔들면서 노래를 했기 때문에 환호를 받았다. 그가 남편을 찾게 되는 결정적 순간 역시 그녀의 섹슈얼리티를 적절히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순이를 순수하게 ‘강인한 여성 캐릭터’라고 보기는 힘들다.
1971년 순박한 시골 아낙네 순이는 왜 베트남으로 가게 됐을까? 그녀의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군대로 도망가더니 진짜 애인으로부터 이별 선고를 받자 도망치듯 베트남으로 간다. 사랑도 잃고 허울뿐인 아내만 있었던 그에겐 차라리 월남전으로 가는 게 해방이었나 보다. 대를 이을 아이만 필요했던 시어머니는 순이를 탓한다. 시댁에서 쫓겨난 순이는 친정에서도 외면받는다. 한번 출가한 여자는 죽어도 시댁에서 죽어야 한단다. 순이가 무심한 남편을 찾아 생사의 현장으로 멀리 떠나게 된 이유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소 지루하고 고전적으로 느껴졌던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계속 답답했던 순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행동은 예측 가능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하며,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자 자신의 승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몰랐던 순이는 전쟁을 거치는 동안 변해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눌려왔던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감정을 격렬히 드러낸다. 도대체 왜 그런 남편을 저리도 찾아 헤매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가 마지막 장면에서야 풀리게 된다.
수애는 수수하고 전통적인 여인에서 점차 대담해지고 강해지는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무대 위 가수로서의 모습은 전쟁에 지친 군인들에겐 먹힐지 몰라도, 스크린 너머 관객들까지 휘어잡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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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녀온 사이에 댓글이 많아져서 해명(?)과 더 하고 싶은 얘기를 덧붙입니다.
일부 독자들께서 제 글을 비난하는 것처럼, 제가 '여장부'나 '여전사' 순이, 또는 70년대 순이에게 똑부러지고 당찬 21세기 여성같은 순이를 바란게 아닙니다.
순이가 왜 무심한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가고, 오매불망 남편만을 찾는가라는 문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이유와 시각이 있지만, 저는 그게 모성이나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오기 또는 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글에서도 썼듯, 시댁에서도 이쁨받지 못하고 게다가 친정까지 '출가외인'이라며 순이를 쫓아냅니다. -_-;;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친정에게서도 버림받은 순이는 베트남행을 결심합니다. 아마도 사랑이나 용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건 그녀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떠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순이는 용감했습니다. 여전히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포기하거나 도망가는 대신 남편을 찾겠다는 끈기를 보여줍니다.
또 순이가 전쟁터 가수 경험을 통해 점차 강인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대 위에서 점점 자시감도 생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지적한 건 그 직접적 계기가 섹슈얼리티 때문이라는 겁니다. 순이는 가수로서 노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성성, 섹시한 몸과 몸짓을 통해 환호받는 것으로 영화에 나옵니다. 그 시절 남자들만 있는 전쟁터에서 그러한 묘사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에서는 오로지 그 측면만 부각돼 나옵니다. 순이가 노래를 통해 전쟁에 지친 영혼들을 보듬어 주는 장면은 헬리곱터 장면만이 유일합니다.
뒤늦게 '씨네21'의 이준익 감독 인터뷰를 봤더니, "이 영화의 남자들은 순이를 한번도 성적 도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미군 중령과의 관계도 그렇다. 모든건 순이의 선택이다... 오히려 순이가 '나는 한국으로 못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의 성적 도구화라는 클리셰를 역전시킨 것인데 그걸 못 읽어내고 되레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다"라고 했습니다.
순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해서, 남자들이 순이를 강제로 성적으로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자의 성적 도구가 아니라고 하는 게 저는 더 이해가 안 됩니다. 즉, 자신이 자발적으로 몸을 팔면 남자의 성적 도구가 된 게 아니다???
"남편 실종"이라고 딱딱하게 반복했던 미군 중령이 순이와의 하룻밤을 통해 "남편을 찾으라"고 명했습니다. 저는 차라리 순이의 열정과 순이의 노래에 감동해서 마음을 바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또 이준익 감독도 말하는 '남자들을 용서하는 순이'라는 시각, 한마디로 순이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그보다 더 큰 모성같은 사랑을 가졌다는 것인데... 갓 스무살을 넘긴 젊은여자에게까지 '위대한 모성'이라는 굴레를 덧씌우는 건 너무 진부하게 보입니다. 도대체 남자들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긍정적이며 최고의 찬사는 '모성'밖에 없는 것인지...
차라리 70년대 한국 가부장제 사회에 몸과 마음이 메어있던 순이가, 마침 갈 곳이 없게 돼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자기를 억압한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털어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가수로서 또 스무살쯤의 여자로서 자아를 찾는 과정이 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준익 감독은 또 이 영화가 베트남 전쟁을 미국식으로 보는것에서 벗어나 우리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 말도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영화 속 베트남 전쟁은 우리의 시각으로 반성하기보다는 '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인 시각을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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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스포일러짓 참 잘하는군..
2008/07/10 20:46영화가 부족하든 넘치던...
영화의 핵심 부분까지 말하면 어쩌라는거야..
당신한테 이런 이야기 해달라고 시사회 표 준건 아니잖아?
원글 쓴 사람입니다. 딱히 스포일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위에서 쓴 내용은 이미 영화 소개에 나오는 일반 줄거리이고, 또 다른 여러 리뷰 기사 등에도 얼마든지 써있는 내용입니다.
2008/07/10 22:22정확히 어느 부분이 스포일러로 느끼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답변주세요.
여주인공을 보았을때 포스가 작다거나 약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2008/07/25 14:16강하다 하여 이기고 장악하고 승리하여 하는것이 아닌듯 합니다.
제가본 마지막 장면은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듯한 느낌이였는데요
감상평 잘 보았습니다.
영화가 흥미 있더라구요 ^^
네. 저도 수애 캐릭터가 나약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처음 영화평이 나왔을 때는 순이의 강인한 여성캐릭터와 그녀의 모성같은 위대한 사랑이라는 측면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2008/07/25 16:31다만 저는 위글에서 썼듯이, 순이가 강하게 변모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자신의 섹시함과 섹슈얼리티 때문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무대위에서 노래하는 건 그렇다쳐도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을 찾기 위해 미군에게 몸을 바칠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영화를 봤는데..제가 여자여서 그런지.. 전 사로잡혔어요.ㅋㅋㅋ스크린속의 써니에게.
2008/07/25 16:26전솔직히 아직도 왜 순이가 그렇게 남편을 찾았는지 알쏭달쏭한 기분이에요..뭘말하고싶었던걸까요.감독은.
70년대를 배경으로 당찬 여주인공을 기대한다면 사실성에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2008/07/25 16:35시대적 배경을 통해 주인공을 이해해야지 현재의 시각으로 캐릭터를 판단하는 것은 글 쓴분의 이해력 부족으로 생각됩니다...
네. 제가 요즘 흔한 당차고 똑부러진 여성을 기대한게 아닙니다. 위에서 말했듯, 영화에서 수애의 변화를 표현하는 과정이 불만족스럽다는 겁니다.
2008/07/25 16:45순이가 순종적이고 고전적인 여성에서 점차 강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직접적 계기가 남자들에게 통하는 여성스러움, 섹슈얼리티라는 게 '조금' 불만이라는 겁니다.
그외에 마지막 장면은 저도 무척 감동스럽게 봤습니다.
님은 전형적인 페미니스트 생각을 하시는군요. 여성이 남자들을 압도하고, 남자와 똑같은 용맹을 갖춰야 진정 강한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페미니즘을 갖고 계시네요. 그럼 수애가 월남전가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아마조네스 여전사가 돼서 싸워야 여성의 강함을 인정했다고 하시려나?? 여장부만이 신세대 여성이란 고정관념이 너무 지나치신건 아닌건지 모르겠네요...
2008/07/25 18:19꼴통 페미니스트의 글이네요....영화를 영화로봐야지 무슨 감독이 여성운동합니까?
2008/07/25 18:42님의 글에 일부 공감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며 내내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치부하는 작태들이 많이 드러나 있어 기분이 몹시 언짢았지요. 밑에 어떤 분은 페미니스트가 뭔지 모르고 여전사가 어쩌고 떠들어대고 또 어떤분은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단어까지 남겨놓으셨는데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제대로 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도 적고 감독도 없죠. 영화보면서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의식조차 가지지 못한 감독들말이죠.
2008/07/25 19:51존 레논의 woman is the niger of the world 추천합니다.
여자와는 다른 남자의 무기가 물리적 힘이듯이 남자와는 다른 여자의 힘역시 섹슈얼리티라고 생각하는데요 섹슈얼리티라는 무기가 없었다면 역대 이름을 남긴 여성이 몇이나 남을까요? 섹슈얼리티 역시 여자가 남자를 굴복시키는 가장 근본적이고 최강의 무기라고 생각 되는데요 영화 보는내내 수애가 남자에게 꿀리고 산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습니다.
2008/07/25 19:57델마와 루이스의 델마같은 강인함을 가진 사람을 원하신건지 모르겠지만요
현대물이라면 글쓴님이 원하는 캐릭터도 충분히 반영할만하다고 생각되지만 37년전의 여성
캐릭터라면 상식적으론 생각하기 힘드네요.
한가지 미군장교에게 남편수색 부탁할때는 너무 전형적이라 그건 좀 열받더군요
2008/07/25 20:00어째서 꼭 그렇게 남자와 여자를 이등분해서 대결 구조로 생각해야만 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런 주장이라면 모든 영화가, 모든 감독이 남녀평등을 염두에 두고 균형을 맞추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할까요?
2008/07/25 21:15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여성성이 부족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다른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이 중심인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고, 이준익 감독,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여성성 부족, 여성비하의 내용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그들 작품의 모티브의 하나라고 생각해야지, 그것을 가지고 감독들의 사상까지 그러하다고 평가해야 할까요?
페미니즘도 좋지만 오버하지 맙시다. 모든 예술작품은 인간 보통의 인간성을 얘기할 수도 있고 특정해서 남성, 또는 여성만의 특별한 성향을 다룰 수 있습니다. 각자의 개성에 맞게 표현하면 되는 것이죠. 노골적인 비하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모두에게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섹슈얼리티가 여자만의 힘이다?
2008/07/28 08:48섹슈얼리티라는 단어를 그렇게 좁은 의미로만, 그리고 여성에게만 적용하는 시각 자체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섹슈얼리티라는 영역을 여성에게 떠넘기면서 여성을 언제까지나 성적 대상으로 삼는 시각이 전제되어있으니까요.
그리고 윗분, 비하라기보다는 모순의 문제입니다. 남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쓰고, 홍보는 여성의 위대함을 다룬 여성영화인 것처럼, 일부러 말을 교묘하게 섞어쓰고 있더라구요. 그런 부분에서 많은 여성 관객들은 '낚였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할 것이겠구요. 감독인터뷰 등에서 차라리 지금과 반대로 영화에 대해 설명했어야한다고 봅니다.
한마디 더 '양성평등을 염두에 두고 균형을 맞춰 작품 만들어야' 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성평등 대신에 인종문제를 넣어보면 아주 쉽지 않을까요. 예술에 대한 예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전제로 해야한다는 점도 너무나 명백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