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의 쿨핫

'파울로 코엘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0/13 파울로 코엘료의 후회없이 인생 살기...
  2. 2007/02/22 11분 (2)
  3. 2005/12/13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 중 가장 처음 읽은 건 몇년 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광기, 사랑, 자살 등의 소재가 매혹적이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어서 읽은 건 ‘11분’.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된다’, ‘여행갈 때마다 가져간다’ 등의 광고 문구에 넘어가 나도 여행갈 때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연금술사’를 사서 읽었다. 그의 소설을 단 세권 읽은 걸로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째 점점 읽을수록 그게 그거같은 느낌이 들까. 사실 코엘료 소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연금술사’일텐데, 물론 나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뭐랄까 리얼리티보다는 신비로움, 영적인 힘에 더 의존하는 그의 작품이 소설로서는 그냥 그랬다.

코엘료는 ‘문학’ 작가라기보다는 에세이스트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은 게 그의 에세이집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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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가 겪거나 주위에서 접한 이야기, 여행을 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엮은 것이다. 수많은 나라를 돌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 노작가의 인생에 대한 통찰은 인상적이다.

연필의 교훈.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다.

“연필에는 다섯가지 특징이 있어. 그걸 네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첫번째 특징은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번째는 가끔은 쓰던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네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 다섯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내가 사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일까,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삶일까?

 우리는 살아온 방식에 얽매여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만다. 기회가 와도 활용할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나 없이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믿으며,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아이들을 또 대학에 보낸다. 그런 삶을 되풀이하며 아무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 ‘난 좀 다르게 살 수 없을까?’라고.

‘죽음을 기억하라.’ 16∼17세기 유럽의 ‘메멘토모리’는 삶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면, 코엘료는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삶을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

 죽음은 삶의 여정에서 중요한 동반자가 되어 항상 나와 함께하며 말한다. “나는 언젠가 당신을 데려갈 테지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네.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맘껏 삶을 누리시게.”
 그러므로, 나는 매순간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할 일이나 경험할 수 있는 것-기쁜, 직업적 의무, 내가 상처입힌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것 등-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그러니, 항상 그것을 의식하고 일분 일분에 감사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죽음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결단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으니까.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산 송장’으로 머물러 있지 않도록 북돋우고, 우리가 늘 꿈꿔왔던 일들을 감행케 한다. 우리가 원하든 말든, 죽음의 사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순. 성공한 삶이란 최대한 모순을 줄이는 일일까.
 
“사람의 가장 우스운 점은 모순이에요. 어렸을 땐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다가도,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잃어버린 유년을 그리워해요. 돈을 버느라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가도, 훗날 건강을 되찾는 데 전재산을 투자합니다. 미래에 골몰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에는 현재도 미래도 놓쳐버리고요. 영원히 죽지 않을 듯 살다가 살아보지도 못한 것처럼 죽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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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책은 나의힘 l 2009/10/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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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이다.
 제목인 '11분'은 성관계 지속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객관적 조사 결과가 아니고 파울로 코엘료 개인의 판단인 듯 하니 남자들은 자만도 실망도 말길...)

 스토리는 이렇다. 옛날 옛적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 다른 모든 창녀처럼 마리아도 순결한 동정녀로 태어났다. 브라질 시골마을에 살던 젊고 아름다운 여성 마리아는 꿈을 찾아 스위스로 떠난다. 어찌어찌하다 마리아는 하룻밤에 1000프랑이라는 검은 유혹에 한번 넘어간 뒤 창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마리아는 강제로, 어쩔 수 없이 창녀가 된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창녀가 됐기 때문에 투철한 프로정신(?)을 가졌으며, 자신의 삶을 관조할 줄 알며 통제할 줄 안다. 그녀는 마약에 찌들고 자신의 삶을 내팽개친 '타락한' 창녀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똑똑한' 창녀다. 그녀는 인생에 모험을 걸고, 스스로 선택한다.

제목 11분이 의미하듯, 또 주인공이 창녀이듯, 이 소설은 한 여성의 성(性)과 사랑에 대한 탐구 기록이다. 소녀 시절 우연히 자위의 쾌락을 맛본 이래, 마리아는 창녀로서 수십명의 남자와 수백번의 섹스를 나눴지만 단 한번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 '특별한 손님'에 의해 섹스의 극단 지점까지 가게 된 그녀는 마침내 고통과 쾌락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한번에 느낀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 드디어 그와 사랑을 나눌 때 그녀는 오르가슴뿐만 아니라 영혼의 소통, (모순된 말이지만) 성스러운 창녀가 된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내가 읽은 코엘료의 마지막 메시지는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가 가장 멋지고 가장 황홀하고 가장 아름답다는 것.
"파리는 언제나 거기 있을 거요"라고 말하는 누군가를 나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두 여자다. 한 여자는 기쁨, 정열, 삶이 그녀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모험들을 맛보길 갈망하고, 다른 한 여자는 진부한 일상, 가족적인 삶, 계획하고 완수할 수 있는 자잘한 행위들의 노예가 되기를 갈망한다. 나는 한 몸 속에 살면서 서로 싸우는 주부이자 창녀다.


한 여자에게 자기 자신과의 만남은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는 하나의 게임이다. 신성한 춤이다. 우리가 만날 때, 우리는 두개의 신적 에너지,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우주다. 그 만남에 서로에 대한 정의가 부족하면, 한 우주는 다른 우주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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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책은 나의힘 l 2007/02/22 10:20


"죽음에 대한 자각은 인간을 더욱 치열하게 살도록 만든다"
식상하고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죽음이 코앞에 있다면 하루하루 지겹고 평범하게 보내는 단 하루에도 우리는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의미있게 살려고 할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삶의 소중함, 삶에 대한 열정을 가르쳐주는 소설이다.

참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요즘 우리 서점가에 댄 브라운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이었다. 참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제목처럼 주인공 베로니카는 죽기로 결심한다. 스물 네 살의 예쁘고 젊은 앞날이 창창한 여자지만, 베로니카는 우울증이나 삶의 절망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 너무 뻔하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냥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죽기 위해 수면제를 다량 먹고 의식을 잃은 베로니카는 '빌레트'라는 정신병원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앞으로 일주일 가량.

죽지 못한 것을 원망하던 베로니카는 정신병원의 '미친 사람들'(이들이 과연 미친것일까 의심하게 하는 인물들- 제드카, 마리아, 에뒤아르)을 만나고 이들과 얘기하면서 삶에 대한 욕망을 느낀다.
또 죽음이 눈앞에 닥친 젊은 아가씨를 보면서 이들 역시 자신의 삶을 다시 평가하며 삶의 의지를 느낀다.
소설 속 반전의 열쇠를 가진 이고르 박사가 쓰게 될 논문 소제목인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가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는 바로 이 소설 전체의 주제가 된다.

모든 훌륭한 문학 작품이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녔다. 또 가끔씩 누구나 느끼는 삶의 부조리에 대한 것,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이 느끼는 유혹과 갈등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 이 소설이 흥미로운 점은 '광기'를 아주 따뜻하게 정상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제드카가 베로니카에게 얘기해준 '왕과 우물' 이야기에서처럼 빌레트 밖과 안의 사람들 중에 정말로 미친 사람들은 누구인지, 또는 미친 사람과 미치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 '광기'가 진정 자유로운 영혼과 열정 있는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과 광기, 피아노. 주인공이 전환을 맞게 되는 이 연결고리는 참으로 낭만적이고 매혹적이다.

<왕과 우물 이야기>

"한 왕국을 무너뜨리려고 마음먹은 마법사가 있었어. 그는 그 왕국의 백성 모두가 물을 길어 먹는 우물에 묘약을 풀었어.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미쳐버리는 묘약을 말이야.
이튿날, 아침, 물을 마신 백성들이 모두 미쳐버렸어. 왕만 빼놓고 말이지. 왕과 그 가족을 위한 우물은 따로 있어서, 마법사도 접근할 수가 없었거든. 불안해진 왕은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안전과 공중 위생에 관한 일련의 조치들을 내렸어. 그런데 관리들과 경찰들도 이미 독이 든 물을 마신 상태였어. 왕의 조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 그들은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지.
왕의 칙령을 접한 백성들은 왕이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확신했어. 그래서 모두들 궁궐로 몰려가 함성을 지르며 왕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지.
절망에 빠진 왕은 왕위를 떠날 준비를 했어. 그런데 왕비가 말렸지. '우리도 우물로 가서 그 물을 마셔요. 그러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아질 거예요.' 왕비가 이렇게 제안했어.
그래서 왕과 왕비는 독이 든 물을 마셨고, 이내 정신나간 말들을 하기 시작했지. 그러자 백성들은 마음을 돌렸어. 그처럼 크나큰 지혜를 보여준 왕을 무엇 때문에 쫓아내겠어?
그 왕국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어. 백성들이 이웃나라 백성들과는 전혀 딴판으로 행동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왕은 죽는 날까지 왕좌를 지킬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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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책은 나의힘 l 2005/12/1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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